간단메모 2013 SUMMER ISSUE 


 

이건 내 어릴 적 기억 한 조각.

그래, 어느 나른한 오후 무렵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전학생이 왔다-

 

「키시 후시코입니다」

 

교실 앞에 서서 원피스를 입은 채 나지막이 소개를 하던 그녀.

그녀를 바라보는 반 아이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놀라움이 섞여있었다.

 

「유우짱, 굉장히 예쁜 아이다...」

 

옆자리 친구의 말대로 차분하고도 조용한 분위기의 그녀는 한 송이의 꽃처럼 예뻤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모두들 그렇게 한눈에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빈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그녀의 얼굴보다는 내딛는 그 한발 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녀의 발밑으로 검고 끈쩍끈적한 뭔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 이외에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리고 또 다른 날의 기억.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난 체육창고에 들어갔다.

혼자 있는 그녀를 찾아서.

 

「보이지 않기에...」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녀의 옆에 조금 떨어져 나도 같이 앉았다.

쾨쾨한 창고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녀가 내 존재를 무시하고 있는 것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아, 점심시간 끝났네」

 

그녀는 전혀 웃지 않았기에 무서웠지만

그녀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검은 안개는 못 본 척 했다.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테니.

 

「가자」

 

창고 문을 열며 난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아련히 날 바라보는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게 가져왔고

그녀의 손이 내게 닿는 순간-

난 커다란 당황함에 주춤해야 했다.

 

그림자가 움직였다-?

 

내 볼을 타고 흐르던 식은땀... 

어느새 두 손으로 내 손을 꽉 잡던 그녀...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그녀는 사람이 변한 것처럼 나를 흠모하듯 따랐다.

 

「유우짱!」

「어, 후시코」

「함께 돌아가자」

 

나에게만 향하는 만면의 미소는

내가 그녀에게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저 애들은 괜찮아?」

「나 유우짱과 함께 돌아가고 싶은걸!」

 

같은 그룹의 친구들도 놔두고 나만 보면 그렇게 따르던 그녀였다.

그 검은 안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다...

 

그리고 어느 늦은 저녁.

우리 둘은 만들었다.

비밀을.

 

「늦었어! 후시코 빨리!」

「기다려-! 너무 빨라 앗! 유우짱 앞에-」

 

뒤를 돌아보며 그녀를 재촉하던 난 발에 무언가가 걸려 넘어지게 되었다.

 

「으으-」

「유우짱 괜찮아!?」

「괘..괜찮아...」

 

땅바닥에 주저앉은 난 괜찮다고 말하며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 무릎은 다 까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런 내게 그녀는 가까이 다가와-

그 무릎에 입술을 대었다...

혀를 대며 할짝이는 그녀는-

나도 모르게 엄습해오는 아픔에 눈가에 눈물이 맺힐 무렵-

 

「비밀이네」

 

날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미소짓던 그녀.

 

「우리 둘만의 비밀-」

 

그 속삭임과 함께

상처는 깨끗이 없어져 있었다...

 

시간은 흘러 우린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고

그녀는 점점 아름다워져 갔다.

 

「키시 사-앙」

 

짓궂게 그녀를 부르는 남학생들.

하지만 그녀는-

 

「3학년 선배들이다」

「키시 상은 본 척도 안 하네- 」

「인사 정도는 해줘도 좋을 텐데」

 

반 친구들의 장난어린 말에도 그녀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을 뿐.

그렇지만-

 

「아, 유우짱!」

 

반대편에서 걷고 있던 날 발견하고는 반갑게 불러주는 그녀.

 

「후시코, 다음 이동수업?」

「응, 미술」

 

어느새 내게 다가와 그 예쁜 미소를 지어주는 그녀.

 

「유우짱, 오늘 부활동 쉬지? 같이 돌아가자」

「나야 괜찮지만...」

 

그녀는 나 이외에는 그런 웃는 얼굴 보여주지 않는다.

난 조금은 걱정된 걸까.

이런 그녀가...

 

「후시코...반 친구들과도 이렇게 얘기하면 좋겠어」

 

이런 내 말에 시무룩해지는 그녀가 보인다.

 

「유우짱과 있는 게 좋은걸......」

「또 그런 소리」

 

그렇게 쳐진 눈으로 날 바라보지 말아줘...

 

「유우! 얼른 가자!」

「아, 으응! 그럼 후시코, 방과후에 봐」

 

날 기다리는 친구들 때문에 난 그녀를 남겨두고 이만 몸을 돌렸다.

 

「방금 3반의 키시 상?」

「말 걸기 어려운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괜찮은 아이 같네」

「이번에 나도 말 걸어볼까?」

 

내 옆에서 그녀와 날 보던 친구들의 한마디들.

하지만-

소,용.없.어.

 

「...후시코, 굉장히 낯을 가리니까...」

 

일순, 그렇게 말한 내 자신에게 놀랐다-

.

.

뚝뚝.

 

「꺄악! 유우! 뭐야 그거!」

「베였어! 아파!」

「아픈 게 당연하지 바보!」

「으~저 피 흐르는 것 좀 봐」

 

종이를 자르다 커터칼에 손가락을 베였다.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

난 어느새 그것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우?」

「보건실에 다녀올게」

「혼자서 괜찮아? 상처 깊어 보이는데」

 

친구들을 뒤로하고 난 향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런 으슥한 곳으로.

 

「아파?」

「응」

 

단 둘이.

그녀와 나.

내 품에 기대던 그녀는-

내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내 상처를 핥아주었다...

 

「상처...깨끗해졌어,,,」

 

말끔해진 내 손을 잡으며, 울리는 그녀의 속삭임이 내 가슴을 타고 전해져 온다...

어두운 구석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비밀을 또다시 확인했다...

.

.

방과후 어느 날-

내가 부활동을 끝내고 교실로 들어서던 참이었다.

 

「후시코?」

 

그녀가 먼저 내 반에 찾아와 있었다.

같이 가려고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손에 무슨 편지를 들고있었고 거기에 집중해 있었다.

 

「뭐야, 여기있었네? 뭘 보고 있어? 돌아가자」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내 목소리에 정신이 들린 듯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그런데 날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어딘지 슬퍼보인다...

 

「유우짱이 쓴 편지라고 생각해서 멋대로 봐버렸어...미안해...」

 

그건, 내 친구가 나에게 써준 편지...

그녀에게 날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그런 사소한 질투의 편지였다.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우리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 내 자신만 생각하고 유우짱에게 달라붙은 거 같아...」

「에?」

「내가 유우짱 곁에 있는 거 폐...끼치는거겠지...」

 

편지가 그녀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한 것일까...

 

「앞으로는 학교에서 유우짱에게 매달리지 않을게. 반 친구들과도 좀 더 사이좋게 지낼게」

 

석양을 등지고 그녀는 나에게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 눈가엔 슬몃 눈물이 차오르고 있음을...

 

「미안해...」

 

난 지금 그녀가 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왜 그녀가 그렇게 미안해하며 눈물을 보이는지...

왜 그렇게 한없이 슬퍼보였는지...

전부 다...

난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난 그저 그녀가 있으면 그걸로 좋았고

그녀 역시 그렇지 않았던가.

 

다음날부터 난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녀의 변화를...

 

「유우! 좋은 아침!」

「어, 안녕」

「있잖아 매점 안 갈래? 배고픈걸」

 

아침 등굣길,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와 인사를 하던 그 때,

난 보았다.

 

「키시 상 안녕-」

「안녕하세요」

 

남자선배의 쑥스런 인사에 밝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던 그녀를 말이다.

 

「있잖아, 다카치 선배가 후시코 널 엄청 좋아해-」

「설마 그럴 리가-」

 

분명 내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그녀 옆에 있던 소녀의 말에 그녀가 민망한 듯 웃는다...

그 순간, 난 그 소녀를 죽이고 싶어졌다...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복도에서 마주쳐도 그냥 스쳐지나칠 뿐...

다만 나를 매달리는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주위로 그 어릴 적 본 검은 안개가 다시 보이게 되었다.

안개가 짙어지면서 그녀의 몸은 점점 무너져 갔다.

난 그런 그녀를 보며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내심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참 바보같게도...

 

그녀는 결국 보건실 신세를 지게 되었고

난 그런 그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게-

 

「후시코!」

「유우짱?」

「괜찮아? 가벼운 빈혈이라며? 선생님이 침대 사용해도 괜찮다니까 좀 자도록 해」

「있잖아, 나...」

「아, 보건실 아무도 없으니까 신경쓰지마」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의 옆에서 그녀를 다독이며 난 즐거운 듯 미소 짓고 있었다...

 

「...랄까, 나도 뭔가 고집부리게 돼서...너와 갑자기 서먹서먹하게 됐어...」

「유우짱」

 

그녀와 다시 사이좋게 됐으면하는 내 맘과 달리 그녀는 진지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됐어」

「에...」

「전학하기 전의...」

 

그녀는 어느새 몸을 일으켜 날 가만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놀란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도

이미 그 옛날과 달리 검은 안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거 내 탓이야? 난...네가 모두와 친해지면 좋다고 생각해서...」

 

난 당황했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럼 너와 헤어지는 거야...?」

 

절박한 듯 외치는 내게 그녀는 양손으로 내 볼을 감싸안았다.

 

「유우짱 탓이 아니야.

원래 초등학교까지만이었던 것을 내가 멋대로 여기까지 늘려받았어」

 

하지만 난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그녀에게 보이고 말았다.

 

「넌, 나와 헤어지는 거 괜찮아...?」

 

이런 내 말에 지어지는 그녀의 아련한 미소...

그녀의 손이 내 손목을 끌어당긴다...

명찰핀의 날카로운 침이 내 손가락을 따끔하게 만든다.

흐르는 붉은 피...

그녀는 거기에 입술을 가져다 댄다...

 

그녀의 입술에 뭍은 붉은 피와,

희미하게 달아오른 볼...

나의 그녀...

난 애타게 그리웠다...

나만의-

 

「가여운 유우짱, 너와 헤어져야 하다니...」

 

안타까운 듯 내 볼을 만지던 그녀는

그 명찰핀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그었다...

방금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는

천천히 내 입술로 다가왔고...

난 자연스레 혀를 내밀어 그 피를...

 

「18살이 되면 돌아올게」

 

슬픈 듯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져 간다.

나처럼...

 

그렇게 우리는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fin.

 

 

기승전여운...

해피엔딩하기엔 그림체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안 될거라는거 예상했지만...

미스테리물이군요.

다른 세계에서 온 그녀는 주인공에게 반해 눌러앉다가

이만 갈 시간이 되어 잠시 헤어지는 그런 상황이겠죠?

잡담은 여기까지...

 



profile
올뺌 2013.11.05 01:02:38

뭔가 아련 하네요/.

profile
하이고오 2013.12.24 01:16:44

뒷이야기가 궁금하네요

profile
zizzy 2019.04.10 21:52:02

18세 이후는 어찌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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