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끄적었던 간단한 감상문입니다 :D
작은 마을에서 한 남자가 차를 몰고 가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게 눈이 머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를 중심으로 -단 한명, 의사 아내를 제외하고- 주위 사람들도 마치 전염성을 띄듯이 전부 눈이 멀기 시작한다. 정부는 이 알 수 없는 질병에 전혀 대처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기 시작한다. 의사 아내를 제외하고 모두 눈이 먼 사람들만이 생활하게 된 수용소는 시간이 갈수록 다툼, 강간, 방화 등 인간 내면의 추악한 면모들을 들어내게 만든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 결국 밖의 사람들도 모두 눈이 멀었음을 알게 되고 그들은 앞을 볼 수 있는 의사 아내에게 의존해 자신들의 집을 찾아 수용소를 탈출한다. 의사 아내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집을 돌아본 다음 그들은 의사의 집에 정착해서 살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은 처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눈이 멀었던 것처럼, 갑자기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를 시작으로 하나 둘씩 눈을 뜨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과연 눈이 먼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가져다줄까? 어렸을 적에 어떤 교육센터로 견학을 가서 맹인체험을 했던 적이 있다. 마치 깜깜한 공간에 나 홀로 버려진 듯한 느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린 나를 그저 울게만 만들었었다. 이렇듯 이 소설은 눈이 머는 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들의 그 본연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눈은 렌즈에 지나지 않죠, 실제로 보는 일을 하는 것은 뇌입니다. 어떤 상이 필름에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죠, ....“ 이 말은 소설 속에서 의사가 하는 말이다. 하지만 백색 질병에 의해 눈이 먼 사람들은 실제로 보는 일을 하는 뇌는 건제함에도 불구하고 문명이 떠받고 있던 인간으로의 존엄성을 스스로 하나 둘씩 버리기 시작했다. 이는 작가가 마치 허울에 쌓인 우리의 지금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 한거풀만 벗겨보면 드러나는 폭력성, 잔인함, 지저분함이 우리들 진짜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나는 이 책의 눈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한 불편함을 느꼈다. 무언가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들쳐 보인다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도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 아내를 메시아적 존재로 내세워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 아내는 폭력성, 잔인성, 지저분함으로의 인간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살인조차 서슴지 않고 행하게 된다. 그리고 수용소 탈출 후 그녀를 중심으로 구성된 7명의 사람들은 이미 인간으로의 모습을 버리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런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자신들만의 ‘조직’을 구성하여 자신들이 살았던 집을 찾아 떠나게 된다.
자신들이 살았던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결국 인간으로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졌다. 자신의 집에는 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노인의 경우는 젊은 여자가 결국 노인을 받아들임으로서 새로운 집을 찾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의사의 집에 정착한 후 세찬 비를 맞으며 온갖 오물을 씻어버리는 모습은 잠시나마 타락했던 자신들의 모습에서 원래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찾는 마지막 과정이 아닐까?
결국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성상들마저 눈이 먼 세상 속에서 그들은 누구의 손에 이끌렸던 간에 자신들의 모습을 찾기 위해 떠났고, 찾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눈을 뜰 수 있었고 다시 세상은 빛을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의사 아내의 눈물을 핥는 개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흔히 남의 눈물을 마시는 자는 그자의 가장 슬프고 해로움을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개는 의사 아내가 좌절에 빠져 눈물을 흘리는 순간 어느새 옆에 다가와 그 눈물을 핥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좌절에서 벗어나 다시 메시아적 존재로서 사람들을 이끌 수 있었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찾는 것은 단 하나의 메시아적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도움으로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런 모습들이 ‘진실’인가에 대한 의문도 생겨났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잃은 미아 상태에서 내가 집을 찾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성을 보게 된 것 같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상실감을 느낄 때 마다 읽곤 합니다. 속편격이라고 할 수 있는 같은 작가의 [눈 뜬 자들의 도시] 라는 책이 있는데 그걸 읽고 뒤 얼마 후에 선거철이었더랬죠. 정말... 정말... 주제 사라마구는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