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메모 건담 AGE 1화의 내용이 아주 약간 있습니다. 


 

제가 건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게 1980년, 건프라(당연히 국산 카피. 제품명은 '칸담'.)를 처음 만들어본 게 그 다음해인 1981년이니,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빨리 건담을 접한 편은 아닙니다. 아마 우리나라 건담팬 1세대의 막내뻘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당시의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건담은 예전에 만들어봤던 다른 조립식 로보트들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그 이후로 로봇대백과니 건담 대백과니 하는 것들을  접하면서 점점 더 건담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저의 70년대가 마징가와 그레이트 마징가로 가득 차 있었다면 80년대는 건담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저랑 같이 놀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리고 80년대 건담보이에게 있어서 오늘, 2011년 10월 9일은 굉장히 뜻깊은 날이 될 것입니다. 바로 저작권자가 제공하는 건담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실시간으로 정식 배포된 첫날이기 때문이지요.

 

건담이 방영하던 당시, 한국에서 비디오플레이어는 그런 게 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사람이 많은 최첨단 기기였습니다.(컬러TV가 선망의 대상이던 시대였다고요!) 당연히 일본에서 방영된 만화영화는 우리나라 TV에서 수입해다 틀어주지 않고서는 볼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놀랍게도 건담은 해적판 서적만 가지고 팬층을 만들어냈습니다. (찬양할 지어다!) 그 시절 건담 팬들의 꿈은 TV화면에서 움직이는 건담을 보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몇년 뒤, 그것이 실현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디오 플레이어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얼마 뒤에 극장판 '역습의 샤아'의 카피 비디오테이프가 돌기 시작한 겁니다.(제가 아는 대부분의 건담 올드팬들은 앞서나가던 일부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본 건담 영상이 이 '역습의 샤아'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드디어 꿈에 그리던 건담을 움직이는 화면으로 본 많은 건담보이들이 감격의 눈물...까지는 안 흘렸고, 좋은 시대가 왔다고 감동은 좀 했습니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제 LD를 들여와서 비디오테이프로 복사해주는 업자가 등장했고, 테이프 한 개당 10000원 정도의 가격에 복사할 수 있는 꿈같은 시대가 왔지만...이쪽으로 세면 얘기가 길어지므로 패스. 그 뒤로 헤이세이건담 파동이니, 턴에이 쇼크니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일단 패스.

 

세월이 흘러서 '일본에서 LD가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시대를 뛰어넘어 '일본에서 방영을 시작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다운받아 볼 수 있는'시대가 되었고, 건담SEED가 '한국에서 동시 감상이 가능한 최초의 건담'이 되었지요. 뭐, 워낙 시대 자체가 그런 게 당연한 시대가 되어버려서 옛날 같은 감동은 없었지만...그래도 옛날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는 했지요.
(그 뒤로 G건담과 건담W가 케이블에서 방영됐지만 몇년 전 것들이라 별 감흥은 없었고...)

 

그리고 오늘, 건담AGE가 방영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방영중인 애니를 실시간으로 보는 게 당연한 시대이고, 720P가 기본인 상황에서 360P로 공개되어 사실상 임팩트 같은 건 거의 없엇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러.나.

 

건담의 제작사가 일본 방영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건담의 영상을(그것도 자막까지 만들어서) 배포했다는 건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건담을 볼 날이 올까?"라는 생각을 했던 80년대 건담보이에게 있어서는 어렸을 적의 망상이 드디어 완성된 형태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LD를 카피한 것도 아니고, 종영된 시리즈를 수입해서 방송하는 것도 아니고(뭐, 옛날에는 이것조차도 '꿈'이었지만), 무단으로 복제된 영상을 받아보는 것도 아닌, 제작자가 스스로 "한국의 건담 팬 여러분, 보세요."라며 건담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제공해주는 것. 그야말로 꿈조차 뛰어넘은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뭐, 그러는 동안 건담 장난감 갖고 놀던 어린아이는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중년 아저씨들이 됐고, 몇몇 친구들은 자기 아들내미한테 건프라를 사주는 위치가 됐지만서도...

 

쓸데 없는 서론이 길었는데, 여기서부터가 건담 AGE 1화의 감상.

일단 첫인상은...뭔가 애매해!라는 거.
일단 스토리는 거의 퍼스트의 오마쥬라고 봐야겠지요. SEED도 퍼스트의 오마쥬가 많아서 '헤이세이 퍼스트'라고 불렀는데, AGE는 SEED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퍼스트 1화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뭔가가 엄청나게 급하게 가는 느낌. 기존에 건담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야 별 문제 없이 스토리를 따라갈 수 있겠지만(전형적인 건담 스토리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뭥미?"라는 반응이 나올 지도...
상황 전개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던지,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된다던지 하는 지적도 여기저기에서 많은 나오더군요. 이 부분은 조금 생각해볼만한 게...일단 퍼스트건담과 비교해보면, 퍼스트에서도 그런 개연성 부족이 여러군데 있었습니다. 그런데...퍼스트와 AGE를 비교해보면 서로 서로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각각 달라요. 퍼스트에서 A라는 부분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는데 B라는 부분은 나사가 하나 빠져있다면, AGE는 A는 어이없게 만들어놓고 B는 치밀하게 묘사한다던가 하는 식으로요. 이건 머리 속으로 아직 정리가 안 되어서 이런 식으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데...어쩌면 지난 30년간 일본 애니메이션의 스타일 자체가 변화해온 것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전체적인 감상은 너무나 전형적인 건담 스토리라 기존 팬에게는 조금 식상하고, 입문자에게는 뭔가 획획 지나가는 스토리라는 거. 저야 나름 기존 팬에 속하는 인간이니 뭔가 심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뭔가 임팩트가 있었다면 그걸로 개연성의 부족을 보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게 부족했다는 느낌입니다.(화면이 멋있으면 스토리 빵꾸난 건 잘 안 보인다는 영상물 만고불변의 법칙.)

 

어쨌거나 '건담 살인사건'이 나오건, '명탐정 건담'이 나오건 다 볼거라는 이즈미 소이치로의 말처럼(눈물은 흘렸지만), 건담 팬이라는 인간이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건담을 안 볼 수는 없지요. 앞으로 1년간, 열심히 볼 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여캐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사람이 1화, 그것도 회상장면에서 죽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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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2011.10.10 20:12:09

근데 에이지는 생긴게 망해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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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b 2011.11.10 23:50:24

건덕후 빼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냥 볼만하다던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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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수 2011.12.12 10:31:13

에이지.. 딱히 건담에 대해 크게 아는것도 아니고 본거라고 퍼스트, 시드, 데스티니, 더블오 정도지만 그냥 너무 유치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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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sh 2012.02.19 23:07:18

뭐가 나오던 결국 스토리는 퍼스트의 데드카피 식으로 나오는군요. 시드도 그렇고…퍼스트의 광명을 업고 가려고 노력하는 신작 건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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