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사항없음은 제가 본 웹툰중에서 소재면에서 가장 선명한 만화입니다. 바로 이 게시판에서 우연찮게 보게 된 물건인데... 과연 괜찮더군요0_0;.

 

그러나 찬사는 생략합니다. 저보다 다른 분들이 이 게시판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어요.

그러니 보다보니 살짝 아쉬운 부분을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이 물건은 여러모로 '만화'같지가 않습니다.

 

 

 

1. 인물 설정

 

해당사항 없음은 학원연애만화로썬 그닥 높은 평가를 하기 힘든 만화입니다. 최소한 제 눈기준으론 그래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눈길이 가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주인공의 설정입니다. 일단 각각의 인물을 제 기준으로(...) 늘어보죠.

 

수민: 만화의 가장 중심인물입니다. 남성기가 존재하는 여성이란 파격적인 설정이 붙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이 여성으로 가는가, 혹은 남성으로 가는가가 이 만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물로써 매력적인 편이지만... 인물의 개념정립이 되질 못해, 인물의 잠재력이 100%발휘되질 못했습니다. 만화자체로써나 인물로써나 매우 애석한 일입니다.

 

민우: 어느 의미에선 수민 이상의 중심인물입니다. 만화의 제목인 '해당사항 없음'을 주인공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거든요. 주인공의 소꿉친구이자, 사랑의 라이벌이자, 지켜줄 여성으로써 주인공을 그냥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주인공 수민마저도 자기 자신을 이정도로까지 제대로 수용하질 못했습니다. 심지어 만화의 마지막에서 수민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역할을 수민이 아니라 민우가 맡기까지 했죠(!!!). 인물의 매력은 가장 높습니다(외모가 딸리는게 흠이지만 뭐 어떤가요? 만화에서 외모가 중요한가요?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지).

 

지혜+영식: 작품을 저울로 본다면 수민은 어느쪽에도 기울어질 수 있는 천징, 민우는 무게추입니다. 그리고 지혜와 영식은 수민의 팔 위에 놓일 분동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별로 맛이 없습니다... 하는 일도 뻔하고... 보기에 매우 심심하기까지 합니다(이후 말할 거지만... 이게 다 수민 때문입니다).

 

 

2. 인물 설정에 따른 만화 구성

 

주인공 수민은 한때 남성으로 자라났고 아직도 남성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여성입니다. 후타나리라고 하던가요? 암튼 이 기묘한 설정은 이 만화에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이 설정이 만화에 가장 제대로 구현이 된 부분은 수민-지혜-민우의 3각 관계 시작점입니다. 민우는 스스로 제3자로 남아있길 거부하고 수민이란 '여성에게' 지혜란 '여성'을 쟁취하고자 수민에게 '남성성으로서' 도전합니다.

 

이 기묘한 -동시에 힘있는- 상황은 주인공이 후타나리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강렬함은 인물의 배분이 명확하지 못해 곧 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네. 가장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이거였어요. 인물의 배분.

 

명탐정 코난에서 히로인인 미란(한국어판)은 도일과 연인인 동시에 어린아이가 된 코난의 보호자입니다. 평소엔 힘쎄고 강한 여자...이상의 의미가 없는 그녀는, 코난과 도일 모두가 작품상에서 의미를 가지는 부분에서만큼은 엄청난 매력을 부여받습니다! 유동적 인물곁에 평범한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평범한 인물이 유동적 인물 이상의 힘을 갖는 대표적인 예죠.

 

해당사항 없음에서도 같은 방식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수민이란 후타나리옆에 평범한 남여인 지혜와 영식을 두기만 하면 끝. 크게 어려울 것도 없는데도 만화는 인물과 인물사이에 생기는, 인물의 힘의 상승을 제대로 타질 못했습니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수민이란 인물의 개념정립이 완전하지 못하단 것에 있습니다!! 수민에겐 '마찰을 일으킬 면적'이 매우 좁았습니다. 없다고 해도 좋을정도에요. 개성이 부족해요. 명탐정 코난을 보면 코난은 한때 성숙한 남성이었지만 지금은 미숙한 소년입니다. 그런데 정신은 성인 남성의 것을 그대로 지니고 있죠. 코난 1기에서 이것 덕분에 얼마나 재미있었습니까! 트랜스포머 영화에서 조그마한(영화 기준) 샘의 집에서 오토봇 개떼와 디셉티콘 한마리, 샘과 주변인물들이 좌충우돌을 벌입니다. 덩치가 산만한 오토봇 무리가 열심히 집 주변에서 소동을 벌이고, 샘과 미카엘라는 그것을 수습하고, 샘의 부모는 그 와중에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얼마나 재미있었습니까! 인물에게 있어서 '마찰면적'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런 예 말고도 널려있습니다.

 

그런데 만화를 보면... 수민은 후타나리란 특성이 거의 살지가 않았습니다. 자기 스스로 마찰을 일으킬 역량이 부족하여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괴롭히게 할 부분이 너무 적은 겁니다. 그래서 이 부족분을 다른 인물들이 직접 수민에게 마찰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진행을 꾸려나가는데... 덕분에 만화에서 수민은 자기 자신의 매력으로 다른 인물의 힘을 살리기는 커녕, 다른 인물의 평이함으로인해 수민 자신의 매력이 감소되는 결과는 가져왔습니다(참고로 전 인물의 매력=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으로 간주합니다).

 

이것이 만화에 미치는 악영향은 실로 지대합니다. 작품중 지혜와 영식은 그저 수민을 차지하는 역할만 맡지 않습니다. 수민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것을 선택하면 수민이 획득하게 될 경품의 역할도 합니다. 쌍방향으로 결정될 선택이 단방향으로 그치게 되면서 만화의 재미도 당연스럽게 반으로 줄어들고 만 겁니다. 이야기의 재미를 두배로 만들 수 있는 보물을 눈앞에 두고 썩힌 꼴이에요.

 

아까부터 전 같은 문제점만 계속 파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만화에서 꾸준히 문제가 됩니다.

 

후타나리로써 수민을 제대로 잡았다면 어땠을까요? 마찰이 되는 부분을 뭐가 되든 하나만 명확히 잡았다면 어땠을까요? 어린애의 몸에 성인 남성의 정신을 가진 코난이나, 겉보기엔 일상사물인데 속은 지구에 막 찾아온 외계인인 오토봇처럼 말입니다. 이 만화에서도 단 하나, 수민의 명확한 개념정립만 되어 있었다면??.

 

이 만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 제대로 살아있지 못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3. 만화의 표현

 

이 만화의 또 다른 특징은, 이것이 만화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만화라기 보단 TV드라마나 영화같습니다. 배경이 거의 매 컷마다 그려져 있고, 인물의 심정과 주변묘사가 일치하지 않고, 인물은 대사에 크게 의존하며, blah, blah, blah...

 

만화는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매체입니다. 그래서 소설도 아니고, 시간에 신경써야 하는 에니메이션도 아니며, 영화는 더더욱 아니죠.

 

만화적 상상력이란 말이 있습니다. 전 이게 만화에 있어선 당연한 귀결이라 여깁니다. 만화는 지면을 사용합니다. 지면은 풍족한 이야기를 넣기에 적합한 매체가 아니죠. 대신 한 지면안엔 무엇을 넣어도 상관없습니다. 즉, 복잡하고 정교한 이야기보단 단순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드는게 만화엔 적절하며, 압축될 수 밖에 없는 표현은 만화다운 표현의 다양성으로 벌충하는 것이 만화의 기본소양입니다.

 

많은 잘 만든 만화를 보죠. 스토리는 라인이 많지 않습니다. 많아야 1~2개 라인이 전부입니다. 대신 이야기의 힘과 표현으로 승부합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을 보도록 하죠. 남장여인 오스칼을 중심으로 중심 스토리라인이 형성되고 사소한 라인이 그것을 보조합니다. 대신 표현은 매우 풍부하여 무도회의 아름다움, 인물의 표현등을 광채와 부드러운 곡선의 활용으로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매우 강조된 묘사를 합니다. '지옥의 외인구단'을 보도록 하죠. 야구단을 중심으로 중심 스토리라인이 형성되고 사소한 라인이 그것을 보조합니다. 대신 야구대회와 인물의 표현등을 클로즈업과 단단한 직선의 활용으로 -역시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매우 강조된 묘사를 합니다.

 

'해당사항 없음'에서 스토리는 라인이 두개나 됩니다. 수민-지혜-민우, 그리고 지혜-수민-영식... 둘 중 하나를 보조적으로만 썼어도 만화에 힘이 살것을 둘의 비중은 거의 동일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좋은 만화라 불릴 수 없는데, 묘사마저도 과감한 생략과 강조를 거의 활용치 못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해당사항 없음'은 지나치게 산만해지고, 진행의 중간중간 힘을 잃고 늘어졌으며, 한 술 더 떠 보는 재미마저 크지가 않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을 조금 더 손봤으면 어땠을까죠? 따지고 보면 메인 테마는 수민이 후타나리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와중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니 중심 갈등은 수민과 민우에게 집중하고, 지혜와 영식을 보조적인 갈등으로 두어서 기로세로의 십자형 스토리라인 하나로 압축했다면요. 두개나 되는 삼각관계로 이야기를 질질 끌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또한 묘사에 있어서 과감한 생략과 강조를 했다면 또 어땠을까요. 종종 그렇게 했다면 정말 효과적으로 다가왔을 장면(대표적으로 지혜에게 한 수민의 기습 키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 때문에 또 안타깝습니다.

 

 

4. 전체적인 감상

 

'해당사항 없음'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의 스토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친숙한 세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질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이 소설이나 영화로 나왔다면 두말할 나위없이 사랑하게 될 작품이었겠죠.

 

그렇지만 이것이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만화로 나왔다는 것. 이 좋은 작품이 만화로써 그 잠재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굉장히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로 나왔다면 흠잡을 곳이 없을 좋은 작품이고(만화로만 나오지 않았어도...), 이것을 추천하는 대에도 망설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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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두가지... 일상과 일상의 이웃이 되는 비일상, 그리고 만화. 이 둘이 하나로 된 작품이, 정말 오래간만에 나왔는데... 그 두가지 중 어느 하나도 100% 살지 못한 아쉬움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더 잘 만들 수 있었잖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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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dsaq1/90063879834

↑해당사항 없음 제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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