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메모 시문 네타 있어요~~ 


시문을 언제봤을까요. 한 3년 전이었나... 제작년도가 기억이 나지는 않네요. 다만 방영 당시 한 주 기다리고 나오는 당일 날 바로 다운받아서 보곤 했습니다. 그 정도로 굉장한 흡입력이 있었고, 너무나도 재밌던 만화였죠. 당시에 볼 때는, 네비릴과 아엘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둘이 언제 사랑을 시작할까 키스신은 언제 나올까 등등을 기대하며 봤습니다. 다른 등장인물도 귀여웠지만 별로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몇 년이 지난 현재, 지난 주말에 시문을 다 보았습니다. 그 몇 년 됐다고 제 안에서 기억되어있던 엔딩장면이라든가, 네비릴과 아엘이 보여줬던 특정 장면이 아예 내용부터 달랐음을 깨달았을 때 좀 충격이었죠. 네비릴과 아엘이 제일 먼저 궁극의 에메랄드 시머전을 보여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다른 인물들이었다던가. 엔딩 장면이 둘이 춤추면서 감동적으로 끝났다던가 하는 내용이 제 기억엔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하나 둘 씩 새로 확인 하는 내용이 있었고, 또 예전에 싫어했던 인물을 좀 더 깊게 살펴보면서 공감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 이 부분이 저한테는 가장 좋았습니다.(아니, 단순한 동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싫어하고 꺼려한 인물이, 바로 파라이에타였죠. 그건 이번에 만화를 보면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네비릴과 아엘의 사랑을 방해하는 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스토리가 중후반으로 진행되어가면서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고 또 저 나름대로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파라이에타. 우선 그녀는, 정말 여린 여자입니다. 팀 중에서 가장 마음이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굉장히 낮죠. 네비릴을 오랫 동안 사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녀 앞에서 그런 감정은 전혀 내보이지 않죠.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네비릴은 아무리아를 사랑하니까, 네비릴은 아무리아를 잃고 나서 힘드니까, 네비릴은 아엘을 좋아하니까, 네비릴과 아엘이 함께 파트너가 되어야 최고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바로 옆에서 함께 시문에 타거나, 사랑할 수는 없지만 하다못해 지켜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해!' 하지만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머리로만 이해시킨 결과, 한계에 다다른 자신의 감정은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아엘과의 관계, 또 자신과의 싸움에서 힘들어하는 네비릴의 옆에 다가가서, 강제로 춤을 추게 하고 쓰러뜨려 키스를 합니다. 그렇지만 강제로 관계를 맺을 정도로 악하지도 못합니다. 쓰러진 네비릴이 결국엔 저항하지 않자, 순간적으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깜짝 놀라 달아나게 되니까요.

네비릴에 대한 파라이에타의 감정이 과연 어떤 사랑일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네비릴이 아엘에게서 또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숨으려고 할 때도, 아엘은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우리 함께 같이 나가자.' 네비릴의 마음이 흔들리고, 스스로 나오려고 할 때마다 가로막아선 건 파라이에타 자신 입니다. '네비릴은 지금 그럴 상태가 아니야.' 하면서 네비릴을 자신 안에 꽁꽁 묶어두려고 하죠.

파라이에타에게서 네비릴은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아엘이 파라이에타에게 언젠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네비릴이 언제부터 네가 지켜줘야만 할 만큼 그렇게 약한 존재가 된거지?' 그 말이 제 가슴 안에 확 꽂히더군요. 이 만화가 이렇게 사람의 심리적인 부분을 잘 다루고 있다니? 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감탄하기도 했구요. 누구보다도 보호받고 싶었던 건 파라이에타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파라이에타가 사랑한 건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네비릴을 생각할 때의 파라이에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지, 신념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잃어버리고 네비릴과 그저 동일시,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극 중에서도, 파라이에타의 온 관심과 집중은 네비릴이지 자기 자신이 아닙니다. 그런 전쟁의 위험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도 살펴봐야 할 것은 자신의 불안하고 상처받을 수 있는 마음일텐데요. 심리적인 분리가, 파라이에타에게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파라이에타를 지켜보니 안타깝고 화가 나더군요.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끝내지는 않더군요. 결론적으로는 대부분의 인물이 해피엔딩을 맞는데요, 파라이에타도 그 중 한명입니다.

네비릴에게 터뜨린 감정의 형태가 현대 사회에서는 분명 범죄에 해당합니다만, 이 일로 인해 네비릴은 파라이에타의 마음을 깨닫고 또한 용서합니다. 그제서야 파라이에타는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화에 가서는, 성별의 선택에서 결국 여자를 선택한 파라이에타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아 정말 파라이에타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감싸안게 되었구나, 진정으로 강해졌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남자처럼 늠름했던 외모와 목소리가 여성스럽게 바뀌어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남자처럼 강해져야만 했던 괴로움에서 벗어나, 여린 자신의 모습을 자신있게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강해졌다는 것이겠죠....

그 아무리 옳은 것이라 모두가 인정해도, 내 마음이 인정하지 않는 것을 머리로만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진정한 이해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아파하는데도 덮어두려고 하고 감추려고만 한다면, 쌓였던 감정은 언젠가는 폭발합니다. (마이히메의 시즈루가 그랬고, 신무월의 무녀의 치카네가 그랬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정말 극단적인 형태였죠. 교도소에 가서 죗값을 치뤄야하는 큰 범죄입니다.) 그것이 외부든 내부든 결국엔 크나큰 상처가 되겠죠. 내부로는 자신의 온 마음을 갉아먹고, 외부로는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줍니다.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상대방에게 말로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겠습니다만, 그럴 수 없다면 자기 자신에게서 들어가서 아파하는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혼자서 너무 힘들다면 믿을 수 있는 지인에게, 믿을 수 있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겠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는 크고 작은 상처들. 그것을 풀어나가는 자신 만의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장한 파라이에타를 보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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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2012.06.06 12:15:50
좋은 글 정말 잘 보고 갑니다. 저도 파라이에타에 대해서 님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 감정의 정리가 잘 안되서 속으로만 끙끙 앓았건만 님께서 시원하게 긁어주시니 뭔가 굉장히 개운한 기분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그런고로 추천!

그러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취약한 부분을 감추고, 억지로 강해져야만 했던 건 알티 또한 마찬가지였지요. 파라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고, 알티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만........어쨌든 그래서인지 서로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 파라이에타와 알티의 관계가 좋았고, 서로의 아픈 부분을 되돌아볼 수 밖에 없었던 파라이에타와 카임과의 관계도 참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p.s 커플로는 상처입어 뒤틀린 관계인 알티카임을 제일 좋아하는데, 인기가 없어서 좀 슬프네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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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 2012.06.06 19:39:35

카임과 알티를 많이 좋아하셨나봐요. 인기가 많이 있으면 좋을텐데~^^ 아엘과 네비릴이 워낙에 인기가 있어서, 그만큼 부각되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문이라는 애니 자체도, 백합이라는 마이너 장르에, 안그래도 내용까지 진지해서 백합 내에서도 폭발적으로 인기가 있다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제가 본 것 중에서는 가장 멋지고 감동적인 만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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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라인 2012.06.06 16:33:44

여러 감정들이 얽혀있는터라 한번만에 모든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긴 힘든 작품입니다. 커플 하나하나에 각각 신경써서보기엔 넘 많은 이들이 나와서....

역시 재탕만이 길일까요 한번 더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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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 2012.06.06 19:44:21

이해하기가 조금 힘드셨나봐요. 아마, 이 작품에서는 나오는 인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세세한 감정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재탕하면 더 재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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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언제인가 2012.06.17 16:39:12

지금은 군생활중이라서(그래봤자 한 달정도밖에 안 남았음),집이 아니라서 못 보겠지만......

 

감상문,잘 읽었습니다.마침 애니 DVD(염가판이기는 해도) 있겠다,소설 있겠다,만화 있겠다,PS2용 게임 있겠다.....이 글에서 유키노 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눈여겨 보면서 감상해보아야 되겠군요,시문.

염통에 각잡고.

 

이 시문이라는 작품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커플은 도미누라x리모네.그리고 한 인물로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윤.

리모네 양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좋았습니다.그리고 도미누라 양도....자신의 펄인 리모네 양을 도구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좋아해가는 과정도 좋았고....그렇게 맺어진 굳은 인연을 바탕으로 어느 선을 뛰어넘어 둘이 함께 높은 곳으로,행복해질 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힘을 내던 모습이 좋았습니다.그게 비극으로,리모네 양의 가슴에 깊게 남을 상처로 끝날 수도 있지만......

윤 양은.....오나시아를 한 사람으로서 있는 그대로 봐 주는 모습이 좋았달까요.고뇌할 수도 있고,상처입을 수도 있는.호수에 있으면서 17세 이상의 사람들의 앞길을 결정짓는 초월자로서가 아닌.

윤 양의 이해심이 정말 좋습니다.포용력이 좋습니다.그리고.....참으로 힘겨울 수도 있는데,그 모든 걸 끌어안고 가기로 결의한 윤 양의 곧은 눈동자가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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