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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명 : 여성 대상 안기고 싶은 여캐 1위 먹은 캐릭터가 태풍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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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70페이지, 가격은 3500원에 소설 온리 책으로 장르는 시리어스입니다.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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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그쳤다.
사방이 평평하게 눈으로 뒤덮여 있고 멀리 하얀색과 그 흰색에 그림자 진 푸른색으로 적당히 발라낸 크림 같은 산맥이 보였다. 그 평원의 한가운데에 숨어있듯 살짝 솟아 있는 눈 더미가 부스럭 움직여 후두둑 쌓인 눈이 떨어진다. 눈 속에서 나온 건 초록빛 텐트였다.
입구 부근의 지퍼가 열리면서 누군가가 나와 기지개를 폈다. 하지만 몸을 찌르는 찬 공기에 급히 망토를 둘렀다.
“아직 꽤 추워요, 하야테쨩.”
뒤따라 나온 사람이 커피를 건네주었다.
“고마워 샤멀.”
하야테가 건내 받은 커피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랐지만 곧 김이 약해져 간다. 따로 식힐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하늘은 구름 때문인지 여전히 회색이었지만 눈의 반사 빛이 상당했기에 어둡기는커녕 밝아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제 날씨는 별다른 방해가 아니다. 문제는 아까 그친 눈보라 때문에 쌓인 눈이었다.
“증거고 뭐고 무의미네, 이정도면.”
눈의 바다가 이런 느낌이겠지. 하야테는 감상에 젖었다. 일하기 싫어져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야테쨩, 놀러 온 거 아니니까요.”
“알아, 그냥 옛날 생각나서 그랬어.”
나노하가 11살 때 추락했던 곳도 눈이 내리던 곳이었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미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번에 들이 키고 샤멀에게 건네준다. 텐트 안에서 비타도 나온다. 아직 졸린 듯 눈을 비비고 있었다.
“시그넘은 눈이 그치는 대로 오겠다고 했으니까, 식사 걱정은 없을 것 같네요.”
“3일만 더 내렸으면 하루 두끼가 한끼로 줄었겠지. 샤멀, GPS 위치 제대로 송신되고 있지? 어차피 곧 통신도 될 것 같으니까 시그넘에게는 현장으로 가서 연락하자.”
샤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텐트를 챙기기 시작했다. 아직 정신이 덜 들었지만 비타가 멍한 눈으로 반쯤 접힌 텐트를 퍽퍽 밟아 공기가 빠지게 도와줬다.
하야테는 린이 들어있는 가방을 옆으로 메고 전송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기압도 안정 되서 바람도 별로 없어서 날아가기에는 문제없는 날씨였다. 긴급 상황이 아니면 비행마법도 보고서를 일일이 써야했지만 눈 부실정도로 하얀 세계를 걸어갔다가는 머리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비타쨩, 샤멀, 텐트 정리 되는 데로 날아가자, 샤멀이 사용 기록 남겨 놔줘.”
샤멀의 클라르빈트가 반지로 변한다. 샤멀의 부탁에 클라르빈트가 ‘Ja’라고 대답하자 대충 접혀 있던 텐트가 반듯하게 접혀 아까의 뭉텅이란 느낌에서 노트 정도의 크기와 얇기로 접혔다.
이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꺼내 쓰라고 비타가 추위에 떨면서 말하자 샤멀은 잘못하면 텐트 찢어진다고 반박했다.
“둘 다 자잘한 건 신경 쓰지 말고, 비타쨩도 디바이스 꺼내서 베리어 자켓으로 입어.”
하야테는 린이 일어나지 않게 조심히 변신하자 뒤따라 샤멀과 비타도 변신했다.
“마법사용 시각 기록 완료. 이제 날아도 괜찮아요. 하야테쨩, 비타쨩.”
그 말에 부유하듯 뜨더니 곧 크게 위쪽으로 날아오른다.
“으이히히힉- 춥데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면서 하야테가 웅크렸다. 아무리 마법으로 온도를 보정했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입안에 들어온 영하 15도의 공기는 턱뼈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하하하, 하야테, 조심하라고~”
공중전이 익숙한 비타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는지 웃으면서 위로해준다. 샤멀은 옆에서 마법으로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는 듯 했다.
“하야테쨩, 북서쪽으로 10분정도 날아가면 될 것 같아요.”
“샤멀, 정당한 속도로는?”
“하야테쨩의 이가 시리지 않는 속도로는 30분정도요”
샤멀이 웃으면서 얘기하는 걸 보면서 참 짓궂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10분안에 날아가기로 하고 속도를 낸다.
바람소리가 귀를 따가울 만큼 때린다. 마법 보정으로 피부는 별로 춥지 않은데 숨쉬느라 입안에 들어가는 공기만 차갑다. 아무래도 베리어자켓 설정을 좀 잘못한 게 아닐까 하야테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면서 온도차를 참았다.
그런 하야테를 보면서 비타와 샤멀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하야테는 일이 먼저라고 입을 앙 다물고 염화로만 대화했다. 그 모습에 어쩔 수 없네 란 미소로 사건의 장소로 날아갔다.
도착해보면 GPS의 좌표 이외에는 찾을 길 없는 평범한 평원. 자료에서 봤을 때에는 여기저기 건물의 잔해가 있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눈이 쌓인 공터 같은 느낌이다.
“아이고 이거 마법으로 녹였다간 증거 없어질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일일이 쓸어 치우자니 5명으로 되겠나.”
천천히 눈 위에 안착한다. 비행마법을 끄자마자 푸욱하고 발이 무릎까지 눈에 빠진다. 비타는 거의 허리까지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샤멀은 비행마법을 끄지 않고 시그넘과 연락을 시도하고 있었다.
“하야테, 눈 너무 많은데…….”
“그러게 시그넘이 빨리 와줬으면 좋겠데이.”
“시그넘 거의 다 왔데요, 오는 데로 눈 좀 녹여달라고 하죠.”
둘 다 다시 비행마법으로 떠올라 한탄한다. 시그넘을 기다리기로 하고 샤멀은 다우징을 꺼내 눈 아래를 검사한다.
눈 아래에는 참혹할 정도의 폐허가 있겠지, 하야테는 혼자 생각한다.
타카마치 나노하 사망일로부터 39일.
임무 중 순직. 덕분에 계속 미루던 승진을 2계급이나 특진했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다.
임무는 로스트로기아를 발견 봉인하는 데에 협력하는 것이었다. 그런지만 도중에 로스트로기아를 노린 무장 단체의 습격을 받은 것이었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바이탈 반응 기록에 확실하게 사망이 확인 되었다. 그렇다 나노하의 시신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었다.
시신 없는 장례식이 시작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특수 수사과로 인계명령이 내려왔기에 하야테는 자진해서 인수 받았다. 아직 장례가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 비비오를 혼자 두는 것은 꺼려졌지만 비비오도 어머니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찾아 달라고 했기에 각오를 굳히고 나노하가 죽은 세계, 척박한 눈의 세계로 왔다.
하지만 시기가 나빴다. 도착하자마자 눈보라가 휘몰아쳤고 그대로 열흘간 발이 묶였다.
‘거기다 증거고 뭐고 다 눈 아래인가.’
추운 공기에 결국 하야테는 콧물을 훌쩍이면서 고민했다. 시그넘의 마법으로 눈을 녹이는 게 과연 괜찮은 짓일까, 불은 증거의 변질을 유발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정도 눈을 손으로 치우는 것도 무리고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무리다. 눈만 싹 사라지는 마법 같은 건 없을까. 하야테는 곤히 자고 있는 린을 깨우기로 했다.
“린, 슬슬 일어나레이-”
하야테는 가방을 손으로 톡톡 쳐 린포스를 깨운다. 가방이 살짝 흔들리더니 안에서 빼꼼하고 린포스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추위에 금방 안으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하야테쨩, 밖이면 밖이라고 알려주시지. 추워라…….”
린포스가 살짝 칭얼거리면서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다가 뒤늦게 생각난 듯 베리어자켓을 입었다.
“미안 갑자기 일으켜서, 혹시 눈만 치우는 마법 같은 거 있나 해서.”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혹은 쉬우면 재미없습니다. 그런 격언이 하야테의 머릿속을 뛰놀았다. 거기다 구름이 걷혀 햇빛이 꽤 강해진 탓에 흰눈이 반사하는 빛도 강렬해서 선글라스라도 껴야할 위기감마저 느껴졌다.
“샤멀, 혹시 뭔가 이 상황을 해결할 만한 거 없나?”
“바람으로 어느 정도 파낸 다음이라면 그럭저럭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까부터 다우징으로 뭔가 측정하고 있던 샤멀이 간단하게 말하자 하야테는 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측정도 그 바람을 일으킬 때 증거에 손상 되지 않도록 깊이를 재고 있던 것이다.
가끔 샤멀이 나를 골탕 먹이는 느낌으로 아무말 안하고 있을 때가 있는 데, 제발 째깍째깍 말해줬으면 좋겠다.
“샤멀, 고마워.”
“별말씀을요.”
샤멀이 다우징을 집어넣고 클라르빈트를 기동한다. 비타와 하야테는 미리 위로 날아올라 멀찌감치 떨어진다.
샤멀의 중심으로 모이던 바람이 조금씩 속도를 갖더니 눈보라를 일으키면서 가루가 들리듯 조금씩 흩날려 파내진다. 가루눈이 되어 이 일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차곡차곡 쌓인다.
샤멀의 마법이 약해지다가 곧 사라졌다. 더 이상은 현장 훼손된다고 멈춘 것이었다. 하야테와 비타가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면서 샤멀이 눈을 치운 곳에 내려와 발을 디디니 아까와는 다르게 발이 빠지거나 하지 않았다. 발로 눈을 조금 긁어내면 바로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오오, 샤멀 굿잡!”
하야테가 기쁜 듯 엄지를 치켜 올리면 샤멀은 어디서 꺼냈는지 커타란 붓을 하야테와 비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샤멀은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직접 해야지요.”
샤멀이 바닥의 눈을 쓸어 치우자 비타와 하야테도 적당히 눈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눈이 치워지면서 점점 현장이 들어난다. 검은 색으로 얼어붙은 핏덩어리, 부서진 디바이스의 파편, 피가 엉킨 머리카락과 살점. 하야테는 이전 조사보고서와 그런 흔적이 어느 정도까지 일치하는지 비교해보면서 눈을 치웠다.
“주, 하야테. 다녀왔습니다.”
시그넘이었다. 손에는 가득 찬 봉투를 두 개나 지고 있었다. 베리어자켓까지 입고 그러니까 묘하게 웃겨서 하야테가 풋하고 웃어버린다. 시그넘이 웃지 말아주세요 라고 표정으로만 말하고 짐을 샤멀에게 건내 주고 하야테에게 자신이 하겠다고 한다.
서류랑 비교하면서 해서 조금 힘들었던 하야테는 시그넘에게 붓을 넘기고 다시 보고서를 봤다.
동서로 길게 뻗은 약 13m의 현장. 사실 실제 현장은 공중이고 바닥은 전투 중 마법에 의한 피해나, 추락한 자들의 핏자국 이외 별거 없다.
“하야테, 여기 이 핏자국.”
서쪽을 시작으로 눈을 치운지 얼마 안 지난 시점에서 비타가 대량의 피가 얼어붙은걸 찾아냈다. 원형으로 크게 퍼져있고 그 곡선을 가늘고 길게 삐져나와 튄 피를 보고 하야테가 조사 보고서를 훑어보면 무심하게 TAKAMACHI NANOHA라고 써져있었다.
그걸 보고 하야테가 현기증이 나서 주루룩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시그넘이 부축하면서 근처 깨끗한 바위에 앉게 해주었다.
고개를 숙여 웅크리면서 하야테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나노하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바이탈 반응에 사망이 확인 되었다지만 그걸 속일 수단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무적의 에이스, 아니 그런 것을 떠나서 하야테는 나노하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 타인을 위해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해 마법을 쓰는 나노하가 간단히 죽을 리가 없다. 친우에 대한 믿음, 마도사로서의 존경, 그러한 것이 나노하의 죽음을 부정했다.
그렇지만 저런 대량의 피를 보면 그런 믿음이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다. 아니 하야테의 감이 말해주었다. 저건 1~2L가 아니다. 얼어서 분량이 늘어나 보이는 걸 감안해도3L 이상. 완벽하게 치사량 이상의 피.
이렇게 눈앞에 대고 나노하는 죽음을 알려주는 건 심하다고 하야테는 울 것 같았다. 자신이 이런데 페이트는 어떻겠는가, 비비오는 어떻겠는가.
“하야테쨩, 조금 쉬는게…….”
“응, 미안, 모두들”
위가 쓰려오는 것을 참으며 하야테는 평정을 위해 잠시 쉬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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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상이다 보니 보기 편하게 엔터로 띄었으나 책에는 이렇게 공백이 많지는 않습니다.)
같이 나가는 실버라인님의 카피본
<편지 / 소설 / 카피본 12p >

부스 위치
나노하 온리전에서 뵈요~